누군가의봄
안녕하세요.
저는 과거에 기간제 교사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공부하는 수험생입니다.
12월 마지막 날 소녀상을 찾아가 기도하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지갑에는 세월호 뱃지를 달고, 폰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케이스를 씌웠고, 손목에는 위기멸종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팔찌를 차고 다닙니다.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잡지도 틈틈이 구매합니다. 작년 겨울에는 시험 치르자마자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고 체감하는 제 생활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너무 상쾌하고 뿌듯했습니다. 작지만 꾸준히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자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제 앞에 놓인 현실에 엄청난 배신감과 회의를 느끼며, 무섭기까지 합니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이 말은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공부로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평등하며, 그 평등한 기회 속에서 노력만 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꿈을 갖고 양심을 지키고 원칙에 따르며 임용합격만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길만을 걸어왔던 저의 과거, 그리고 여전히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재, 힘들 때마다 상상해 온 합격 후의 미래. 이런 저의 과거, 현재, 미래가 원칙을 짓밟고 평등과 공정을 위배하는 '기간제, 강사들의 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추진'으로 인해 부정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이 사라지려 합니다.
현직 교사들, 수만명의 예비교사들, 학부모, 학생들, 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 심지어 다수의 기간제 교사들도 '기간제, 강사들의 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추진'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론이며 민심이고, 정교사는 임용 합격만으로 되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입니다.
그러나 왜 교육부 장관님만은 이것을 모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교육부만이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이토록 멋진 말을 위배하려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육부는 법에도 명시된 내용을 위배하며 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그러한 상식 밖의 논의를 하는 심의위원회 회의는 밀실에서 열리고 있고, 교육문제를 다루는 그 위원회의 구성원은 노동계 인사가 다수입니다.
원칙이 무너지는 사회, 역차별을 양산하는 특혜, 노동직만을 추구하느라 무시되는 성직, 전문직으로서의 교사. 법보다 앞서려 하는 떼법. 그 누구도 소통해주지 않는 벽을 향한 우리들의 외침.
대통령님,
정교사보다 실수령액이 높은, 한시적 채용이라 법으로 명시된 기간제 교사들이 약자입니까? 정교사 자격증이 없이도 학교에서 일하며 2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강사 그들이 약자입니까? 기간제 자리도, 강사 자리도 인맥이 없고 빽이 없어 구하지 못하고 1년이고 2년이고 기약도 없이 공부만 하는 임용 수험생이 약자입니까? 정교사가 언제부터 떼쓰면 되는 직업이었습니까? 교원자격증 없이도 가능한 것이었습니까? 임용 시험 없이도 가능한 자리였습니까?
정말 소리 높여 외쳐보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도,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원칙에 따르고, 평등과 공정을 믿고 임용 합격을 위해 공부만 했던 우리 수험생들은 바보였던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것인가, 이 나라 교육에는 필요 없는 존재들인가.
임용 시험이라는 원칙이 존재합니다. 이를 통해 전문성을 가진 교사를 양성합니다. 그래야 공교육이 바로 서고,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도 존재하는 것이라 저는 자부합니다.
대통령님.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임용시험'만으로 '정교사'가 될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고 공정한 과정 속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저의 노력이 부족해서 정교사가 되지 못한 거라면 더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원칙을 짓밟고 차별이 이루어지지 않게 그것만 지켜주십시오.
기간제 교사들이 시험 합격 후 정교사가 되어 교단에서 평등과 공정함에 대해 당당하게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댓글 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