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자식죽은게 뭐가자랑이라고생각되어서 모든방송도거부하엿습니다 군부대장례식을치르고나니 몇칠이지나서인천보훈청에서 서류준비하여 유공자등록을하라하여 준비서류다마치고 한달이지나서다시 유공자는될수없다 그이유는 그병이 군에서생활하면서 발병햇다는 확실한근거가없다는 대한의사협회의진단이나왓다면서억울하면 보훈청을상대로 재판을개인이알아서하라고 원청에서내린결정이라 해줄수가없다는 그런말도안되는소릴하더라구요 당시 너무분통이터지고 억울하고 자식군대에서보내고 나라에서관리하는보훈처에서이런대우를받으니 그때부터 시작된그늘이지금까지병되어가는듯합니다 개인의사비를들여서 변호사릀선임하여 인천지방법원으로소송에임햇으나 담당판사는 중간에도자주바퀴고 재판도 기일도 길어지면서 정작아버지인제게는 한마디도묻지도 대답하게하지도않으면서2년을끌다가 판결땐 나오지마세요하면서 기각 내가왜자식을보내고 나라에서 이런대우를받아야하는자괴감이가슴을쓸어내리는데그누가알겟습니까 고등법원에다시항소햇지만 당시판사는지금도기억이선합니다처음재판을시작하는데 판사라는사람이 아이이게뭐야이러연서 재판을시작하는데 그때심정은사고안친건만으로도 다행이라생각합니다 역시내겐한마디도 묻지도않고그저선임한 변호사에게 대충물으면서 누가보아도 어쩔수없이시간보내는그런식으로진행을마치더군요 당시함께근무햇던 중사 하사를다음재판때증인또는참고인으로서 출석시켜 그먼곳까지찿아가서 2차판결때참고인으로써출석하엿으나 재판관 먼곳에서못올줄알앗는데 오셧네요 이러면서 진지하게당시상관의예기를